Artist Note 2023

Wherever I open my eyes, close them, or take a step, I am greeted by dolls lined up.
I spend the beginning and end of each day with them. However,

"Why do you like dolls?"

I found myself at a loss for an answer.
Deep within, all that resided was an immature self, unable to amass anything significant, rendering it impossible to find a response, let alone articulate it.

A passive, evasive, and hypocritical self, despite its arrogance, required guidance.

My father, playfully reprimanding the doll with the words, "Take your hand off!" and removing its fingers from its mouth - it was a deficiency I had not uncovered on my own but required another"s question to reveal it although it was a part of my own memories.

In my childhood, perhaps someone else removed the doll"s fingers, but my subconscious self may still be sucking on them, waiting for someone, oblivious to the cause.

Thus, those beings, unable to control their own bodies and replete with awkward and affected gestures, deeply resonate with the dolls surrounding me.

Through them, I aspire to discover my true self.

One that can confront boundless desires and persistent deficiencies. Though there may be times when I attempt to avoid these aspects, I long for something that can stand by my side unwaveringly, free from shame and anxiety, enduring indefinitely.

Hence, I hope to transform into something truly meaningful.

작가노트 2023

눈을 뜨고 눈을 감고 걸음을 옮기는 곳마다 인형이 늘어서 있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모두 그것과 함께한다. 그러나

“인형을 왜 좋아해?”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

내면엔 무엇 하나 쌓지 못한 미성숙한 자아뿐이라
스스로 답을 찾고 말하기는 불가능했다.

수동적이고 회피하며 가식을 떠는 자아는 그 오만함과는 달리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손가락 빠는 인형에게 ‘손 빼!’하고 장난스레 호통치며 손을 빼버리는 아버지,
나의 기억이지만 스스로 발견하지 못한, 타인의 질문으로 겨우 발견한 결핍이었다.

어린 시절 그 인형의 손가락은 타인에 의해 빠졌을지 모르나
무의식 속 자아는 원인도 모른 채 여전히 손가락을 빨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어색하고 가식적인 몸짓으로 가득한 그것들,
나를 둘러싼 인형에게 깊은 동질감을 느낀다.

그것을 통해 진정한 자아를 찾고 싶다.

해소할 수 없는 끝없는 욕망과 결핍을 마주하고
때로는 그것에서 도망쳐도 마음껏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내 곁에 영원히 남아 불안하지 않을 무언가를 찾고 싶다.

그리하여 언젠가 진정한 무언가로 변화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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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Note 2017

Questioning on loneliness was the biggest task for me as I always embraced loneliness. If you are a second child, you can sympathize with this loneliness with a nod. Additionally, if you are a woman, our sorrow might surface, one by one. Lastly, if you have a timid personality, your inside story which you couldn't voice might boil up.

Maybe it was during my childhood when I started to face loneliness. Financial affluence took away the time spent with my parents, which lead to emotional malnourishment. Hollowness and fear gave birth to loneliness.

I tried to recover from loneliness. However, another shade of loneliness filled up. My rational judgment was confused by this repeated phenomena, and that returned as ironic emotions and constrained all my senses.

Whenever these happened, I went under the piano chair, crouching my small child body. There I performed a ritual, which was drawing pictures. That confined, small place was a safe haven that held me tight. I took solace spending time under the chair. Also, the drawings resulted from my ritual lead to a huge reward; my parent's compliment. The ritual stemmed from loneliness began to heal me and it continued as my work.

The drawings on canvases are reflections of me, which subconsciously detained loneliness at my core. When I am not able to make decisions and judgments due to excessive emotional labor, passive attitude and solipsism bar honest expressions.

The contemplation on my solitude reminded me of someone who just resembled me. He was a clown, who made people laugh with a fancy appearance, goofy gestures and facial expressions. I was tearing up as I sympathized my emotional irony with him. Honesty was not allowed to him, and he was acting as if he was never wounded. The nose of the clown in my drawing has drawn over on this emotion that is disconnected, and it stimulates inner pain and the irony on the other side at the same time.

If anyone is acting like this clown that has been ignoring inner pain and loneliness or sympathizing with my solitude, I am carefully assuming that my small ritual could be a consolation for them as well

작가노트 2017

항상 외로움을 품고 살아왔던 나에게 외로움에 대한 자문은 풀리지 않는 커다란 과제였다. 둘째인 사람이라면 이 외로움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것이다. 더불어 여자라면 그 동안 겪었던 우리의 서러움이 하나, 둘 떠오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원래 소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입 밖으로 소리 내 말하지 못했던 내면의 이야기들이 끓어오를지도 모른다.

외로움을 만난 것은 유아시절일 것이다. 경제적 풍요로움은 부모님과의 시간을 빼앗아 갔고, 결핍된 나의 생활은 공허함과 공포감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외로움을 낳았다.

이것을 치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또 다른 색의 외로움이 채워질 뿐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반복되어 이성적인 나의 판단을 혼란스럽게 하였으며, 그것은 모순된 감정으로 돌아와 나의 모든 오감을 억제하곤 하였다.

그럴 때면 나는 피아노 의자 밑으로 들어가 작은 몸을 더욱 더 웅크려 그림을 그리는 작은 의식을 치렀다. 그 협소하고 비좁은 공간은 나를 꽉 잡아주는 안식처였고 그곳에서의 시간은 곧 큰 위안이 되었다. 또 그 결과물로 탄생한 그림은 뒤늦은 시간에 귀가하신 부모님에게서 ‘칭찬’이라는 큰 보상을 얻기도 하였다. 외로움에서 시작한 그림은 곧 나를 치유하는 행위가 되었고 이것은 작업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캔버스에 등장하는 드로잉은 이러한 외로움이 녹아 무의식의 중추에 억류되어버린 외로움, 즉 “나”의 모습이다. 감정노동에 시달려 판단과 결정이 장애가 생기면, 수동적 태도와 태아상태의 회귀본능이 솔직한 표현의 모든 수단을 차단하게 만든다.

이 같은 “나의 외로움”에 대한 고찰은 그것과 온전히 닮은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였다. 그는 화려한 겉모습에 언제나 우스꽝스러운 몸짓과 표정을 지으며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광대였다. 내면의 솔직한 표현은 허용되지 않고, 마치 상처가 없는 이처럼 연기하는 모습은 나의 감정적 모순과 닮아있어 눈시울을 붉게 자극하였다. 드로잉 속 광대의 코는 모든 수단이 차단된 감정에 덧씌워져 내면의 아픔과 이면의 모순을 동시에 자극하게 된다.

각자의 내면에 존재하는 아픔과 외로움을 무시한 채 상처가 없는 광대처럼 연기를 하거나 나의 외로움에 조금이라도 공감을 한다면, 나의 이 작은 의식이 그들에게 역시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생각해본다.